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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원더풀라이프> 내 인생의 한 순간만영화 2023. 2. 19. 21:23반응형
살면서 한 번쯤은 사후세계를 생각하곤 한다. 죽으면 끝이라는 말도 있지만, 죽고 난 후에 아무것도 없다면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영화 <원더풀라이프>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가장 소중한 추억 하나를 짧은 영화로 만들어주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당신은 가장 소중한 추억을 기억할 수 있나요?
천국으로 가기 전 '림보'에 도착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접하는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가장 소중한 추억 하나를 고른다. 그 후엔 림보의 직원들이 이 추억을 한 편의 짧은 영화로 재현해 준다. 그렇게 영화 한 편이 완성이 되면 그 영화를 가진 채 천국으로 떠나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사람들 중 영원이 간직할 추억을 쉽게 정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도저히 고를 수 없다며 계속해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사람들이 선택한 추억은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이 담겨있는 평범한 일상의 추억이다.
하지만 소중한 추억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림보의 직원이 되어, 림보에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은 무엇이냐고. 타인에게 질문을 하는 동시에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일 것이다. 답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인생에 미련이 많아 단 하나의 기억만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어떤 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 고르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면서 결국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도 있다. 림보의 직원이 되는 것이 그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아니면 형벌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가장 좋은 기억은 있을 것이라는 따뜻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남기고 싶은 순가
이 영화를 보면 내게도 같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평생을 간직하고 싶은 딱 하나의 기억은 무엇일까. 하나의 기억을 선택할 수 있을까. 나도 추억을 선택하지 못해 림보의 직원으로 남지는 않을까. 그때 번뜩 떠오르는 기억 하나가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내 기억으로는 가족들과 짧은 여행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와 동생은 차 뒷자리에 앉아 있었고, 동생은 졸음을 못 이겨 이미 잠에 들었다. 나도 조금씩 잠이 와서 잘듯 말듯한 상태였다. 엄마와 아빠는 차 앞 좌석에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이따금씩 뒷좌석의 나와 동생을 돌아봤었다. 늦은 오후여서 차 안으로 노을이 들어오고 있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시간이라 그때 부모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고, 찰나의 순산과 분위기만 기억날 뿐이다. 어린 내가 그때 느꼈던 감정은 평화로움과 안전이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고,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순간도 있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생각한 기억은 정말 작고 찰나의 기억이다. 평소라면 전혀 떠올리지 못할 기억인데, 왜 이 순간을 기억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영화 <원더풀라이프>에 나온 사람들이 소소하고 행복한 기억을 선택한 것과 같은 이치가 않을까.
많은 영화를 보다 보면 내 인생을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평소에는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들로 '나'에 대해서 알게 된다. 때로는 나를 아프게 할 때도 있고, 위로를 줄 때도 있다. 이 영화는 나에게 위로를 준 영화이다. 어떤 것도 풀리지 않아 힘들어할 때 이 영화를 보게 됐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기억들을 많이 떠올렸다. 과거에는 정말 힘들다 생각했던 순간도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정말 좋은 양분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본 시기를 지금 생각해 보면, 힘든 와중에도 행복한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인생을 작은 행복과 소소한 기쁨으로 채워가면 좋은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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