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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남산의 부장들> 날카로운 침묵영화 2023. 2. 21. 01:04반응형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사건'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 대한민국 대통령을 암살한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40일 전에, 미국에서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이 청문회를 통해 정권의 실체를 고발한다. 그를 막기 위해 중앙정보부장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 나서게 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줄거리를 보면 알다시피, 이 영화는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소설인 <남산의 부장들>을 각색해 만든 영화이다. 그 시절 중앙정보부는 남산에 있었고, 이 중앙정보부는 독재 권력하에 폭력과 고문 행위를 저질렀다. 시민들에게 공포의 존재였을 중앙정보부의 부장은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녔을 터였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인 <남산의 부장들>이 갖는 의미가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공포의 상징
중앙정보부는 5.16 군사정변의 주체들이 주도하여 설치한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이다. 이 기관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국내외에서 수집하여 관련됨 범죄를 수사하고, 국가 기관의 정보 및 수사활동을 조정하고 감독하는 특수기관이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는 존재한 이래로 집권 정치세력의 공작 정치와 시민 기본권을 억압하는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정치적 갈등과 대립에 관여하였다. 정치적 활동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조직과 인원을 동원하여 대통령을 정점에 둔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과 반대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이런 중앙정보부의 감시 및 통제 대상에는 시민 사회의 개인과 단체는 물론이고, 여야당 국회의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활동 양상은 특정 방침의 고지 및 명령, 기관 상주 및 탐문, 도청과 미행, 고문, 납치 등으로 다양하고 극단적이었다. 그러면서 암암리에 정부의 시책을 홍보하고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 중앙정보부의 부장이 바로 김재규, 영화 속 인물로는 김규평이었다.
김규평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
이 영화는 대통령 암살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규평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대통령에게 충성을 하던 그가 대통령을 암살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실행을 한 순간까지, 영화는 그의 시선을 따라간다. 자극적이면서도 덤덤한 시선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더 긴박하게 만들어낸다. 이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병헌의 연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대사를 하고 있지 않을 때 나타나는 표정과 눈빛 연기가 영화가 덤덤한 문체를 담아낼 수 있도록 만든 것 같다.
이병헌이 연기를 잘한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대사를 최소화하면서 이끌어내는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그는 김규평의 심리를 세심하면서도 정밀하게 묘사하고, 절제된 감정 연기가 관객들이 김규평에게 더 몰입될 수 있도록 하였다. 김규평은 다른 캐릭터에 비해 말이 적었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병헌은 사소한 행동 연기로 그의 성격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김규평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나 또한 김규평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그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그의 감정을 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규평은 왜 대통령을 암살하였는가
영화를 보면 그가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비판하는 대사가 있고, 이는 대통령을 암살한 표면적인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김규평에게는 진짜 이유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내에서는 계속해서 김규평의 심리를 따라가게 된다. 나는 영화를 보니, 대통령의 신뢰가 자신이 아니라 경호실장에게 넘어가면서 그가 위기감을 갖게 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대통령의 암살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 인물인 김재규의 암살 이유가 정말로 대의적인 이유인지, 개인적인 이유인지, 아니면 둘 다 해당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김재규가 마지막에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의 김규평에게는 대국적인 이유보다 개인적인 이유가 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독재자를 암살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결과가 남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알고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사건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독재자 암살 후에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하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한 군인이 나오는 것으로 끝이 나며 암울한 역사를 다시금 견뎌야 한다는 것을 관객 모두가 알고 있다. 근현대사는 말 그대로 격동의 시기였다. 침략, 전쟁, 독재,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기 위한 염원과 희생 등 수많은 사건과 감정이 뒤섞인 것이 바로 근현대사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을 절제된 어조로 이야기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묵직한 침묵이 더 날카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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